지나간 일을 서술하여 앞으로 다가올 일을 생각한다.[각주:1]


  • 2013년 4월


옛날 西伯[각주:2]은 羑里에 갇혀 있으므로 "주역"을 풀이했고, 공자는 陳나라와 蔡나라에서 고난을 겪었기에 "춘추"를 지었으며, 굴원은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 "離騷"를 지었고, 左丘明은 눈이 멀어 "국어"를 남겼다. 손자는 다리를 잘림으로써 "병법"을 논했고, 여불위는 촉나라로 좌천되어 세상에 "呂覽[각주:3]"을 전했으며, 한비는 秦나라에 갇혀 "說難"과 "孤憤" 두 편을 남겼다. "시" 300편은 대체로 현인과 성인이 발분하여 지은 것이다.[각주:4]


백삼십편에 52만 6500자로 씌여진 방대한 책을 쓰면서 사마천은 壺遂와의 대화에서 "나는 이른바 지난 일들을 적어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것을 간추려 정리하려 할 뿐 창작하려는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이것을 "춘추"와 비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라는매우 겸손한 말로 사기를 칭하지만, 인간에게서 볼 수 있는 모든 면을 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책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지난간 일이 서술된 사기를 통해 앞으로 다가올 일을 생각할 수 있는게 아니겠는가.


宮刑을 당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 당시에 살지 않는 자로서 똑같이 느낄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보다 명예를 소중히 여겼던 당시였기에 죽음보다 더 괴로웠으리라 미루어 짐작해본다. 치욕스러운 일을 겪어야 했던 사마천은 그보다 앞서 고통과 굴욕을 당했던 이들과 그들이 남겼던 뛰어난 업적을 항상 생각다. 고통이란 뛰어난 결과를 얻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양분이 될 것이라는 생각. 이는 사기 전체에 중요한 밑바탕이 된다. 물론 그런 생각에는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 생각이 옳든 옳지 않든, 최소한 그런 자기위안이라도 없었다면 견딜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나는 스스로 생각이 깊고, 합리적이며, 포용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때마다, 그전까지의 내가 얼마나 편협하고 어리석었는지 깨닫고는 놀라게 된다. 사기에 나오는 많은 인물 중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자만하고, 탐욕을 그치지 않는 자들은 결국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에 의해서 몰락한다. 그러나 자신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은(최근 유행하는 말로는 자신을 객관화) 거친 소용돌이를 피해 각자의 인생을 만들어간다. 그들은 항상 겸손하고, 상대를 존중하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꼭 필요한 삶의 지침이다.


민음사에서 완역 출간된 사기는 表와 書를 제외해도 本記, 世家, 列傳이 2,000여 페이지가 넘는다. 따라서 항상 옆에 두고 삶의 지침을 삼아야지, 한번 읽고 덮어버릴 책은 아니다.


본기本記는 지루하며, 세가世家는 재미가 시작되고, 열전列傳은 소설을 읽듯 무척 흥미롭다. 유방을 도와 한漢나라를 건국한 주역들의 삶과 심리상태를 묘사한 열전, 재밌는 얘기를 담은 골계滑稽열전이 재밌고, 개인적으로는 숙손통(叔孫通) 열전이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사기의 白眉는 누가 뭐래도 각 편마다 끝에 나오는 "태사공이 말한다" 부분임에는 많은 이들이 동감할 것이다.


다만,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지도자료가 첨부되고, 익숙치 않은 연호(年號, OO왕△년) 옆에 서력기원(기원전◎◎◎년)을 같이 표기했다면 좀 더 이해가 편했을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러나 이 책은 완역完譯 본이지 해설서가 아닌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


끝으로 기억에 나는 구절을 적어본다.


의복이란 입는데 편하기 위한 것이고, 예란 일을처리하는데 편리하기 위한 것입니다.

책 속의 지식으로 말을 모는 자는 말의 본성을 다할 수 없고, 옛것으로서 지금을 만들려고 하는 자는 일의 변화에 통달할 수 없다. - 趙世家 p518~521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도 살아있는 자는 부끄럽지 않다.

곧은 신하는 재난이 닥치면 절재가 드러나고 충성스런 신하 또한 재앙이 이르게 되면 행동이 분명해진다. - 趙世家 p525

평 상시에는 그의 가까운 사람들을 살피고, 부귀할 때에는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을 살피며, 현달을 했을 때에는 그 사람이 추천하는 사람을 살피고, 곤궁한 때에는 그 사람이 하지 않는 일을 살피고, 가난할 때에는 그 사람이 가지려하지 않는 것을 살피십시오. - 魏世家 p558

뱀이 변하여 용이 되는데, 그 무늬는 변하지 않는다. 家가 변하여 國이 되었지만 그 姓氏는 변하지 않는다.

- 外戚世家 p749

주는 것이 곧 얻는 것임을 아는게 정치의 비책이다. - 官·晏列傳 p74

안다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어떻게 쓰느냐가 어렵다 - 老子·韓非列傳 p502

물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기의 길흉을 알 수 있다.

성공했으면 그 자리에 오래있지 말라. - 范雎·蔡澤列傳 p502

욕심이 그칠 줄 모르면 하고자 하는 바를 잃고, 가지고 있으면서 만족할 줄 모르면 가지고 있던 것마저 잃는다.

- 范雎·蔡澤列傳 p503

소매가 길어야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아야 장사를 잘할 수 있다.(韓非子) - 范雎·蔡澤列傳 p504

죽음을 알면 반드시 용기가 솟아나게 된다. 죽는 것 그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고 죽음에 대처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 廉頗·藺相如列傳 p545

너무 곧은 것은 굽어 보이고, 길은 본래 꾸불꾸불하다. - 劉敬·叔孫通列傳 p112

힘들때 치욕을 참지 못하면 사람 구실을 할 수 없고, 부귀할때 뜻대로 하지 못하면 현명하다고 할 수 없다.

- 季布·欒布列傳 p124

자기 몸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시행되며, 자기 몸이 바르지 못하면 명령해도 따르지 않는다. 속담에 '복숭아나 오얏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 밑에는 저절로 샛길이 생긴다' - 李將軍列傳

한 번 죽고 한 번 사는데 사귀는 정을 알고, 한 번 가난하고 한 번 부유함으로써 사귀는 모습을 알며, 한 번 귀했다가 한 번 천해짐으로써 사귀는 참된 정을 알게 된다. - 汲黯·鄭列傳 p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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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기열전 中 태자공자서(太史公自序) p882 [본문으로]
  2. 周나라 文王 [본문으로]
  3. 呂氏春秋 [본문으로]
  4. 각주1 참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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