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 흑인들은 백인들처럼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총,균,쇠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출판사
문학사상사 | 2005-12-19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인종주의적 설명 방식을 뒤집는, 문명 발전에 관한 새로운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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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년 6월 26일


왜 우리 흑인들은 백인들처럼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뉴기니 친구인 얄리의 의문으로부터 인간의 문명이 차이가 나는 궁극적인 이유에 대해 감춰진 진실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나간다.


유럽인이 남북아메리카를 정복할 때 가지고 갔던 것은 비단 사람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앞선 기술, 정치적 조직과 더불어 (본의는 아니지만) 병원균도 함께 했는데, 원주민들에게는 유럽인의 총보다 병원균이 훨씬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아메리카를 정복할 수 있었던 직접적인 원인일 뿐 궁극적인 원인이 될 수 없다.


저자는 궁극적 원인에 대해서 식량생산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인류가 수렵채집생활을 거쳐 정주생활을 하면서 식량을 직접 생산하기 시작하였고,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기존 야생식물을 작물화하는 과정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모든 지역에서 작물화를 위한 식물이 풍부했던 것은 아니다. 작물화가 용이한 식물이 비교적 풍부한 곳이 있는가하면 전혀 없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곳에 거주했던 인류는 다른 지역에서 적절한 작물을 제공받지 않는 한 직접적인 식량생산이 불가능했다.


가축화도 비슷하다. 일견 쉬워보이는 가축화였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무수한 동물 중에서 가축화를 할 수 있는 동물은 온순해야하고, 사람에게 복종해야 하고, 먹이가 저렴해야 하고, 질병에 면역성이 있어야 하고, 성장이 빨라야 하고, 감금 상태에서도 잘 번식해야했다. 그러나 이처럼 복잡한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야생동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와 같은 작물화와 가축화가 중요한 이유는 식량생산과 생산성 향상을 통해 인구밀도가 높아지고(반대로 인구밀도가 높아져서 식량을 생산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잉여생산물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는 식량생산에 참여하지 않는 전문화 조직을 발생시킴으로써 문자, 정치 조직, 앞선 기술 등의 밑거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작물화와 가축화는 지구 모든 곳에서 이루어지지 못했다. 서남아시아, 중국 등 일부 지역에서는 비교적 빠른 시간에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지만, 다른 대륙에서는 전혀 없거나 일부만 가능했다. 그것은 작물화, 가축화할 적당한 야생동식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방법은 앞선 문명을 효과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앞선 문명의 사람이 그렇지 못한 지역을 차지함으로써 문명이 확산되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비슷한 위도 상에 위치할 경우는 계절 및 일조량 등의 환경적 조건이 비슷하기 때문에 작물화와 가축화의 전파가 쉽다고 얘기한다. 반대로 위도가 다를 경우에는 환경적 차이가 커서 동일한 작물과 가축도 쉽게 이동할 수 없었는데, 긴 가로 축을 가진 유라시아 대륙이 전파가 빨랐던 반면, 세로 축으로 이루어진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아메리카대륙은 남북으로 긴 형태이며, 안데스산맥, 사막 등으로 교류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소수의 작물과 가축도 쉽게 전파되지 못했다. 결국 작물화와 가축화를 바탕으로 기술과 정치조직을 내세운 유럽인에게 정복당하게 된 것이다. 반면에 서남아시아와 더불어 대표적으로 작물화와 가축화에 성공하고 문명을 발달시킨 중국이 유럽에게 밀리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설명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매우 설득력있게 말하고 있다.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을 통해 저자가 최초에 고민했던 부분, 왜 문명은 차이가 발생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점이 이 책의 장점인데, 더불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그러나 쉽게 반박하지 못했던) 오해들 중 하나인 인종에 따른 우열에 대한 어리석은 의문을 합리적 근거로 반박할 수 있다는 점과 추운 계절에 사는 인류가 도전에 맞서기 때문에 더운 지방에 사는 사람보다  번성하게 되었다는 비합리적인 의문에도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된 점이 좋았다. 실제 생물학자들이 지난 40년간 인종에 대해 연구한 결과 생물학적으로 인종이란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인다고 한다.[각주:1]


그런데, 한편으로는 또 다른 의문도 생긴다. 선택할 수 없는, 우연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문명화가 구분되고 발전의 격차가 벌어진다면 그 지리적 위치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절대 극복할 수 없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지정학적 위치나 그 밖의 자연적 차이는 지금도 여전히 인간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어서 누군가에게는 이점으로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는 하고자 한다면 고립을 피할 수 있고, 다양한 문명의 이점을 비교적 쉽게 습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얻은 정보와 기술을 통해 문명의 격차를 줄이고 앞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따뜻한 지역에서 문명이 시작되었지만 추운 지역에서 환경적 불리함을 극복하고 문명을 선도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쉽지만은 않다. 불리한 점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문명화의 필수적 조건이 지리적 위치였다면, 앞으로는 또다른 필수조건이 필요할 것이고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문명화에 앞서 나가는 길일 것이다.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서 지구상의 수없이 많은 식물과 동물 중에서 작물과 가축으로 만들 수 있는 종이 매우 적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는데, 그렇기에 현대의 중요한 작물과 가축의 대부분을 만들어낸 고대인들의 고난과 노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의 말미에 한국인과 일본인의 쌍둥이론이 언급되어 있다. 이 내용은 한국인으로서 무척 흥미로웠는데, 한국과 일본은 적대감과 경멸을 떨치고 한핏줄이라는 유대감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재발견할 수 있는가에 동아시아의 미래가 크게 좌우된다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끝으로 과거를 돌이켜보면 진보와 혁신을 했던 인류는 살아남았으나 그렇지 못했던 인류는 결국 사라지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점은 우리가 혁신과 진보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해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시사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1. 불량의학, 크리스토퍼 완제크, 열대림, p19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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