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을 최초로 통일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진시황(秦始皇)은 중국 고대사의 최고의 황제 중 한명일 것이다. 진시황은 지리적으로 중국을 통일했뿐 아니라 문화적, 제도적으로 통일을 하였고, 이후 중국 역사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비록 짧은 통치기간이었지만, 이후 한(漢)나라는 진(秦)나라의 제도를 받아들여 중앙집권체제를 완성하게 된다.


그런데 진시황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출생의 비밀이 빠질 수 없으니 바로 진시황의 생부(生父)는 장양왕(莊襄王)이 아니라 여불위(呂不韋)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에서는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보다는 여불위열전(呂不韋列傳)에 다음과 같이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여불위는 한단의 여러 첩 가운데 외모가 뛰어나고 춤을 잘 추는 여자를 얻어 함께 살았는데, 그녀가 아이를 가진 것을 알게 되었다. 자초(子楚)[각주:1]는 여불위의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그녀를 보고 한눈에 반해 일어나 여불위의 장수를 축하하면서 그녀를 달라고 했다. 여불위는 화가 치밀었지만 이미 자기 집 재산을 다 기울여 자초를 위해 힘쓰고 있는 까닭은 진기한 재물을 낚으려는 것임을 떠올리고 마침내 그 여자를 마쳤다. 그녀는 자신이 아이를 가진 몸임을 숨기고 만삭이 되어 정政[각주:2]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자초는 마침내 그 여자를 부인으로 세웠다.[각주:3]


그렇다면 이 내용은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사기』가 인류 최고의 역사서임에는 부인할 수 없지만, 그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고 할 수 없다. 사마천은 전설과 항간에 떠도는 얘기도 같이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마천이 사실이라고 생각했다기보다 그 시대의 이야기를 적음으로써 당시 사람들과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는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기록에 대해서는 그 진위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으며, 진시황의 출생설에 대해서도 당시 진(秦)에게 굴복해야 했던 동쪽 여섯 제후국의 증오로 꾸며낸 이야기라는 여러 논쟁이 있었다. 과연 사실은 무엇일까? 진시황의 생부는 여불위가 맞을까? 많은 시간 동안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여러 자료를 통해 저마다의 주장을 하는, 어쩌면 여전히 진행중인 내용이지만, 여기서는 사기, 사기교양강의, 한비자교양강의에 언급된 내용만으로 추론해보고자 한다.


한자오치(韓兆琦)의 『사기교양강의[각주:4]에서는 진나라가 조(趙)나라를 공격하여 자초를 비롯해 아내와 아들까지 위기에 처했던 순간의 사마천의 기록을 통해 이에 대한 진실을 찾고 있다.


자초의 부인은 조나라 권문세가의 딸이라 피신할 곳이 있으므로 모자가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각주:5]


한자오치에 따르면 '조나라 권문세가의 딸'과 '한나라 출신의 사업가 여불위의 애첩'은 그 신분에 차이가 뚜렷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전혀 다른 신분이라는 열쇠를 통해 진시황의 생모가 여불위의 애첩이 아닐 수 있다고 추론하고 있다.


또한 『전국책』을 통해서도 이야기의 허구성을 살펴볼 수 있다. 사마천은 전국 시대 인물을 기록할 때 『전국책』의 자료를 무척 애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불위의 기록만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전국책』에는 자초가 여불위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진나라 왕위를 계승했다고 기록되어 있을뿐 여불위 애첩의 잉태에 대한 내용은 없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자오치는 잔인하게 동쪽 여섯 제후국을 멸해 천하를 통일하고, 폭압적인 통치를 했던 진시황에 대해 사마천이 불만스러운 감정을 드러내고 싶어서 기록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여불위 생부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여불위 생부설이 거짓이라는 것은 『한비자교양강의』(가이즈카 시게키)에서도 그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1974년 제1차 발굴, 1976년 5월 제2차 발굴, 1977년 제3차 발굴된 진시황제릉에서 발굴된 무인 토우의 신장은 175cm에서 185cm에 이를 정도로 매우 크다는 점이 특징이며, 장군으로 보이는 인물은 190cm에 달한다.[각주:6] 그밖에 사실적으로 표현된 용모의 준수한 이마, 곧게 뻗은 눈썹, 움푹 들어간 눈, 예리한 각도로 돌출한 높은 코, 단정한 입술, 예외 없이 기른 콧수염과 턱수염과 커다란 키 등은 중국인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에 분포하는 몽골 종족에서는 찾을 수 없는 전혀 다른 인종의 특징으로, 미국의 미술사가들 중에는 이 토우의 인물이 중앙아시아 민족에서 기원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각주:7]



진시황릉 <출처:위키백과>



저자는 당시 서역인 중앙아시아에는 아리아 계열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는 대월씨(大月氏) 종족이 살고 있었는데, 진시황은 아리아족에 속하는 이 대월씨로부터 용병들을 징발했을지도 모른다고 추정하며, 진시황릉의 토우가 대월씨의 인종을 보여주는 새로운 자료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진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연횡책을 주장했던 유세객 장의(張儀)는 진나라의 용맹성을 선전하며 "산동 즉 동쪽 여러 나라의 병졸들은 갑주로 몸을 단단히 무장하고 전쟁을 하는 데 비해 진나라 병사들은 갑주를 버리고 맨발로 적에게 달려든다"(『전국책』「한책」)고 하는데, 이는 발견된 토우가 투구를 쓰지 않은 것과 일치하는 주장이며, "왼손으로 적의 머리를 잡아챈 뒤에 오른쪽 겨드랑이에 끼어서 포로로 사로잡는다. 흡사 맹분(猛賁)이라는 용사가 겁쟁이를 대하는 모습이다"(『전국책』「한책」)라는 내용은 덩치가 큰 진나라 병사들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키가 크고, 코도 뾰족하며, 얼굴은 온통 수염으로 덥수록한 용모의 진나라 병사. 그렇다면 진시황제의 용모는 어땠을까?


위(魏)나라에서 온 병법에 조예가 깊었던 위료자(尉繚子)는 진시황의 용모를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진시황은 생김새가 눈이 벌처럼 길고 가늘며 코는 독수리 부리 같고 목소리는 승냥이를 닮았다. 아무리 봐도 인간다운 마음은 없고 이리나 호랑이의 마음을 닮은 것 같다. (후략) 『사기』「진시황본기」[각주:8]


처럼 위료자는 진시황의 모습을 '용모괴위'(容貌魁偉, 용모와 체격이 장대하고 훌륭)한 인물이라고 말한다.

진시황


앞서 진시황릉에서 발견된 평균 180cm의 신장, 앞으로 튀어나온 가슴, 날카롭고 높은 코, 수염을 기른, 이란계 대월씨에서 징집된 용병이라고 의심되는 토우의 모습은 위료자가 알현한 진시황의 용모와 체격이 매우 흡사했다고 한다.


즉, 진나라 장양왕과 조나라 수도인 한단(邯鄲)의 가희(歌姬)사이에 태어난 자식이므로, 실제로 융적(대월씨) 같은 서북 민족의 피가 일부 섞여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으며, 진시황이 이리와 호랑이 같은 사나운 성격의 소유자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도 그가 서북 유목민족 계통에 속한 징표라는 것이다.[각주:9]


만일 진시황이 여불위와 그의 애첩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용모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사실로 종합해보면 『사기』「여불위열전」에는 진시황의 생부가 여불위로 기록되어 있지만, 「본기」에는 애첩의 자식이라는 기록만 있을 뿐 이에 대한 논쟁이 많다는 점[각주:10], 진시황의 생모를 조나라 귀족[각주:11]으로 소개한 점, 그리고 진시황의 용모가 서북 민족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는 점으로 추론해보면 진시황의 생부가 여불위일 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아마도 여불위가 생부라는 이야기는 당시 진나라에 굴복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증오와 그 정통성을 인정하기 싫었던 마음에서 지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정통성을 부정하는 비슷한 이야기는 역사 속에서 언제나 등장하지 않는가. 가까이는 "가짜를 내쫓고 진짜를 세운다(廢假立眞)"이라고 하여 신돈의 아들로 몰려 이성계에게 쫓겨난 고려 우왕(禑王)도 비근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Believe It or Not


사기교양강의사기열전1한비자교양강의




  1. 뒤에 莊襄王이 되었다. [본문으로]
  2. 후에 진시황秦始皇 [본문으로]
  3. 사기열전1, 여불위열전, 민음사, p617 [본문으로]
  4. 사기교양강의,한자오치,돌베개 [본문으로]
  5. 사기교양강의, p27, 민음사本 사기열전1中 여불위열전에는 다음과 같다. "자초의 아내는 조나라 부호의 딸이므로 숨을 수 있었기에 어머니와 아들이 마침내 무사하였다.", p617 [본문으로]
  6. 한비자교양강의, p103 [본문으로]
  7. 한비자교양강의, p104 [본문으로]
  8. 한비자교양강의, p120, 민음사本 사기본기 中 진시황본기에는 다음과 같다. "진나라 왕은 사람됨이 오뚝한 코, 가늘고 긴 눈, 사나운 새 같은 가슴, 승냥이 같은 음성에 은사를 베푸는 것은 적은 데다 호랑이나 이리 같은 마음을 품고 있어 (후략)", p213 [본문으로]
  9. 한비자교양강의, p120 [본문으로]
  10. 사기본기, 진시황본기, 민음사, p209, 장양왕이 조나라에서 볼모가 되어 있을 때 여불위의 첩을 보고는 기뻐하며 그녀를 얻어 시황始皇을 낳았다. [본문으로]
  11. 사기열전1, 여불위열전, p617, 민음사本에는 조나라 부호의 딸이라고 언급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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